입력 : 2011.08.05 11:47

CEO 위민훙의 창업 스토리와 '접착제' 리더십


한국인들만큼이나 중국인들도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영어교육하면 딱 떠오르는 회사가 있다. 바로 신동방(新東方). 학생수가 300만 명에 미국 나스닥에까지 등록된 이 거대학원,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아보자. <편집자주>


 

1993년, 위민훙은 10 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2명과 함께 신동방을 시작했다. 몇 십 명의 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한 것이 이들의 출발이었지만 지금 신동방은 재학생이 전국적으로 300만 명이 넘으며 직원 수도 7천명이 될 정도다. 중국에서 영어권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면, 그 학생의 70-80%는 신동방을 거쳐간다.  또 영어 꽤나 한다는 사람은 대부분 이 학원을 다녔다. 또 중국 전역에 43개의 지사가 있다. 2010년 매출은 3.8억 달러(약 3천 8백억 원), 순이익은 7천7백 8십만 달러(약778억 원)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2006년에는 교육업체로서 중국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현재는 다양한 언어교육과, 직업교육, 육아교육, 유학준비 및 컨설팅, 과학분야까지 확장했다.


지금은 중국 교육의 아버지, 하지만 초라한 시작


중국에서 '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민훙 회장. 그러나 위회장의 창업스토리는 이에 비해 초라하다. 62년생인 그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삼수 끝에 베이징대학교의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어렵사리 명문대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베이징 표준어를 하지 못해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웠고 또 영문과에 들어오긴 했지만 영어를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노력을 했지만 그는 대학 4년내내 꼴등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인생을 바꿔보고자 유학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그의 동기 50명 중 49명이 모두 유학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위회장은 3년 동안 준비를 했지만 3년 내내 유학에 실패했다. 결국 유학을 접고 베이징대의 영어강사 직장을 구했다. 중국 영어교육시장이 커질 것이란 생각을 한 위회장은 1993년 11월, 신동방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꿈이 크지 않았다. 학생 몇 명만 있어도 밥벌이는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2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신동방은 중국 전역에 퍼지면서 영어 교육의 판을 바꿔놓았다. 지난 20년간 어떤 일이 있었길래 매년 100만 명이 입학하는 기업이 된 걸까? 


혼자의 힘이 아닌 팀의 힘으로 문화를 만들다


중국은 90년대 중 후반부터 해외유학의 문이 넓어졌고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에서 유학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학원은 딱히 없었던 것. 위회장은 여기에서 사업의 기회를 발견했다. 자신이 유학을 준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유학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동방을 토플과 GRE 학원으로 특화하고, 토플과 GRE하면 신동방이 떠오르도록 입소문을 퍼트렸다. 위회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학생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위회장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태까지 이르렀다. 위 회장은 팀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위 회장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 교육에서는 기(氣)"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기(氣)"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 그 기운을 학생들이 받으면 서로 시너지를 낸다. 그래서 신동방에는 좋은 기를 만들 줄 아는 인재가 필요하다" 위 회장은 혼자 스타 강사가 되기보다 스타 강사팀을 꾸리는 계획을 세운다.


 

먼저 베이징대 영문과에서 가장 성적이 뛰어났던 동기 왕챵(王强:왕강)을 찾아가 같이 신동방을 크게 키우자고 제안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꿈을 펼치고 있던 왕챵은 이 제안에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미래가 보장된 삶을 살 수 있는데, 이름도 없는 학원에 인생을 걸라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프린스턴 대학교 교정에서 위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많은 수의 중국 유학생들이 위회장에게 "위선생님"이라고 깎듯이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미국에서 10여 년을 생활한 왕챵을 알아보는 학생은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왕챵은 거기서 신동방의 비젼을 보았고 미국생활을 버리고 신동방에 동참했다. 왕챵을 필두로 벨연구소에 다니고 있던 쉬쇼핑(徐小平:서소평), 그리고 뽀반이(包凡一:보반일)도 삼고초려하여 최고의 팀을 만들어갔다. 


위회장을 포함한 이 4명의 팀이 신동방을 성장시키는 주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포용, 창조, 원칙주의,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신동방 조직문화를 만들어갔다. 그러자 많은 해외유학파 인재들이 신동방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인재들이 몰리니 신동방의 영어교육은 더욱 재미있고 유명해졌다. 


 

인재를 끌어 모으는 접착제 리더십


그러나 훌륭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기업의 문제는 모두 너무나 뛰어나다는 것이다. 신동방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모두 미국, 유럽, 호주에서 나름대로 엘리트 교육을 받고 귀국한 유학파들이라 자기주장이 강했다. 회의를 하면 뛰어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모두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아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런 팽팽한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고 좋은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언제나 위회장의 몫이다. 모든 아이디어를 융합하여 마무리를 하는 유연한 리더십이다. "정말로 신기하다. 매번 위회장은 마치 접착제처럼 우리들의 생각을 연결해주며 서로 붙여놓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동료인 왕챵은 이렇게 말한다. 경영을 몰랐고, 능력상 뛰어나지 않았던 위회장. 장점이 있다면 자신을 내려놓고 남들의 의견을 들을 귀를 가졌다는 것이다. 자기를 내려놓고 남들의 의견을 연결하여 재구성하는 힘이야 말로 날고 뛰는 인재들이 신동방에 딱 붙어있게 하는 힘이자 위회장만의 접착제 리더십인 것이다. 


신동방은 영어학원이 아니다. 인생학교다.


위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학생들이 영어만 잘한다고 사회 나가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인생관, 삶에 대한 태도,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긍정이 있어야 성공한다." 위회장은 신동방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지만 실제로는 신동방 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신동방이 추구하는 정신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인생은 아름답다"이다. 이는 사실 위회장의 인생철학이다. 위회장을 비롯하여 신동방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인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신동방그룹의 건물에 들어서면 여기가 영어학원이 맞는지 놀랍기도 하다. 벽에 걸려있는 액자에는 영어가 아닌 명언, 책 속 좋은 문구 등이 걸려있다.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읽으면서 마음을 키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동방정신의 전파자인 위민홍은 학생들로부터 지금도 회장님이나 사장님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어디서나 누구든 늘 "위선생님"이라고 불러준다. 존경하는 인생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민홍은 자기 생계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중국 교육 방향을 생각하는 리더가 됐다. 지금까지 오프라인 교육으로만 성장하던 신동방은 이제 온라인교육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기회를 주고자 한다. 또한 1년 전부터 기업교육도 함께 시작하여 교육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신동방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함께 지켜보자!

취펑화 IGM 선임 연구원 jhchoi@ig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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