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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손바닥만한 화폭, 넘쳐흐르는 순수

입력 : 2011.01.11 03:02

장욱진 화백 20주기 기념 회고전… 6·25전쟁 중 그린 '자화상' 등 70여점
어린아이 그림처럼 단순하고 우화적, 작가의 無欲·강한 생명력 느껴져

20세기 중·후반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장욱진(1918~1990) 화백의 20주기를 맞아 갤러리현대가 장욱진미술문화재단과 공동 주최하는 회고전은 독창적인 세계를 이룬 작가의 삶과 예술을 되돌아보게 한다. 14일 시작하는 장욱진 회고전에는 초기작인 〈독〉을 비롯해 걸작으로 꼽히는 〈자화상〉 등 대표작과 미공개 작품 70여점이 나온다.

장욱진 화백은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 시절 '전일본소학생미전'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일찌감치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일본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받았다. 일본 유학 시절이나 귀국 후 활동기는 서양의 입체파를 비롯해 추상표현주의 등 다양한 사조가 실험되던 시기였지만 장 화백은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해나갔다. 그는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 진열과에서 2년간 일하면서 한국의 전통 예술작품을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심미안이 뛰어났던 그는 백자와 민화(民畵), 전통 공예품에 심취했고 고분 발굴단을 따라다니며 벽화를 공부했다. 장 화백은 이어 서울대 교수가 됐지만 작품에 몰두하기 위해 1960년 교수직을 사임했다.

이후 장욱진 화백은 경기도 덕소(1963~75)를 거쳐 서울 명륜동(1975~79)과 충청북도 수안보(1980~85), 경기도 용인 구성(1986~90)에 화실을 마련해 그림에 열중했다. 그는 화실에서 혼자 자취하며 그림을 그렸고 작업이 없을 때는 술로 지냈다. 작가는 생전에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덕소 시절에는 화면에 물감을 두껍게 발라 마티에르가 느껴지지만 명륜동을 거치면서 화면은 캔버스의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묽어졌다.

장욱진 화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자화상〉. 6·25전쟁 당시 고향인 충남 연기에서 그린 작품으로 연미복을 입고 황금벌판을 걷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고향에서의 체험은 이후 작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갤러리현대 제공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독〉은 화면 가득 독으로 채우고 왼쪽에 앙상한 가지를 그려넣어 묘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독 아래 보일 듯 말 듯 까치 한 마리가 긴장감을 부드럽게 풀어주면서 미소를 자아낸다. 중앙 집중적인 구도가 강하게 보이는데, 그의 작품은 후기로 오면서 화면이 즉흥적인 구도로 바뀐다.

〈자화상〉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폭음에 빠져 있던 작가가 고향인 충남 연기로 옮겨 완성한 작품이다. 고향의 자연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찾은 작가는 분출하는 창작열을 느꼈다. 손바닥 만한 종이에 연미복을 입고 황금벌판을 걷는 자신을 그린 작품으로 전쟁의 포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자연 속에서 절대 고독을 즐기는 자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전쟁을 잊고 싶은 마음을 나타냈다. 그에게 고향의 체험은 창작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자화상〉은 회화 작품으로는 드물게 문화재로 지정됐다.

작품 〈모기장〉은 보일 듯 말 듯한 모기장을 두고 바깥 세계와의 거리를 암시한다. 어두컴컴한 집에는 등잔과 밥그릇, 요강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그려넣어 작가의 무욕(無欲)을 그대로 보여준다. '심플'이란 말을 좋아했던 작가는 이렇게 생활과 작품 제작에서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했다.

왼쪽은 〈모기장〉이고, 오른쪽은 〈나무와 새〉. /갤러리현대 제공

장욱진의 작품은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간단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작가는 줄 하나를 긋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는 등 스스로에게 치열하고 준엄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작품은 10호 미만의 작은 것들이지만 안정된 구도와 색의 통일, 생명력 강한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었다. 농촌 풍경과 가족도, 새와 달·해 등을 담은 우화적(寓話的) 화면이 우리에게 생명의 강함과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는 2월 27일까지 열리며, 20주기 전시에 맞춰 마로니에북스에서 장욱진의 영문판 화집을 냈다. 관람료 2000~3000원.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