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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람과 이야기] '흥남부두 철수' 영웅 포니 대령 증손자, 원어민 교사로 '한국사랑' 잇는다

입력 : 2010.06.08 03:07 / 수정 : 2010.06.08 03:21

포니 대령(사진 왼쪽)과 현봉학 박사.

당시 통역 현봉학 박사 통해 포니家와 한국 인연 알게돼
"기념비속 증조부 사진 뭉클… 백두산에 꼭 올라보고파"

지난 4일 오후 전라남도 목포시 상동 영흥중학교 1학년 7반 교실에서 영어 숙어 'in front of(앞에)'를 가르치던 원어민 교사 벤 포니(Ben Forney·24)씨가 머리가 큰 사람이 그려진 그림카드를 꺼냈다. 그리곤 "영화관에서 이런 사람이 앞에 있으면 영화가 잘 안 보이겠지요?"라고 말하자 학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포니씨는 지난해 7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미 교육위원단에 원어민 교사 지원을 해 한국에 왔다. 아버지 네드 포니씨는 "우리 포니 집안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한국에 가겠다니 대견하다"며 반겼다. 포니씨 몸에는 60년 전 6·25전쟁 당시 흥남부두 철수 때 수많은 한국인 피란민 목숨을 구한 증조할아버지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피가 흐르고 있다.

1950년 12월 초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흥남부두까지 쫓긴 미국 10군단 사령부는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흥남부두에는 피란민 10만여 명도 몰려와 있었다.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현봉학 박사(의학)가 에드워드 포니 대령을 찾아가 "피란민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포니 대령과 현 박사는 최고 책임자인 알몬드 소장을 설득했다. 화물을 줄여 피란민을 태우기로 했다. 탱크 같은 무기도 버렸다. 군함과 화물선·상선 14척이 여러 차례 피란민 10만 명과 미군 10만 명을 태워 날랐다. 1000명 정원인 상륙함에 피란민 1만명이 타기도 했다.


 

지난 4일 오후 전라남도 목포시 영흥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원어민 교사 벤 포니(Ben Forney·24)씨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포니씨의 증조할아버지 에드워드 포니 대령은 6·25전쟁 중 흥남부두 철수 작전 때 수많은 한국인 피란민 목숨을 구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배가 출발한 때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고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 일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렀다고…." 지난해 10월 포니씨는 미국인 친구 2명과 함께 거제도 흥남철수 작전비를 찾았다. 포니씨는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증조부 사진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포니씨는 "어릴 때는 증조부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했다. 회계사였던 할아버지는 아들과 손자에게 자기 아버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니씨는 "아마도 군인이었던 증조부가 전 세계를 다니며 가정을 돌보지 못해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증조부는 한국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다시 한국에 돌아와 1957년부터 3년간 한국 해병대 고문으로 있으면서 해병대를 교육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포니 대령은 1965년 사망했다.

포니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한 증조부 얘기를 듣게 된 건 우연이었다. 역사 교사인 아버지 네드(Ned)는 1990년대 중반 교원 연수 프로그램으로 3주 동안 한국에 오게 됐을 때 현봉학씨에게서 "당신이 포니 대령의 손자냐?"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현 박사가 '포니'라는 성을 가진 미국인이 한국에 왔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해 찾아낸 것이다. 손자와 증손자는 그제서야 포니 대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았다고 한다.

2000년 미국을 방문한 현 박사는 포니 대령 손자·증손자와 함께 포니 대령이 묻혀 있는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벤은 "국립묘지에 묻힌 수많은 유명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 증조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현 박사는 포니 대령 가족과 함께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기념관도 방문했다. 현 박사가 2007년 세상을 뜬 뒤에도 미국에 거주하는 현 박사 가족과 포니 대령 가족들은 '대(代)를 이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생전 현 박사가 참여했던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는 벤의 할아버지 에드워드 포니(증조부와 같은 이름)씨에게 오는 12월 사업회가 마련한 흥남철수작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달라고 초청했다. 아버지를 원망해온 아들도 이제 72세가 됐다. 흥남철수 60년이 되는 그날, 아들은 아버지 포니 대령과 '늦은 화해'를 하게 된 셈이다.

생전의 현 박사와 포니 대령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포니 대령이 보낸 편지 중에는 '다시 한번 함께 백두산에 올라가고 싶다'는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증손자 벤 포니씨는 "한국에 있는 동안 증조부가 가고 싶어했던 백두산을 꼭 올라보고 싶다"고 말했다.
흥남부두 철수 영웅중 한명인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증손자인 벤 포니씨가 전남 목포 영흥중학교에서 원어민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